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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 그리고 100

180614

어떤 경험 혹은 능력이나 기술의 숙련도를 0에서 100까지 수치로 나타낸다고 치자. 0은 미경험, 100은 완벽이라고 했을 때 대개는 각 정수 구간의 의미가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점수로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을 예로 들어 커트라인이 60점이라고 했을 때,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구간은 59와 60 사이가 된다. 이럴 때에는 심지어 같은 한 구간이 아니라 훨씬 긴 구간인 0에서 59보다도, 60에서 100보다도 단 한 구간인 59에서 60이 중요하다. 이처럼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한지는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좀 더 일반적으로 놓고 보면 가장 중요한 구간은 어디일까? 나는 0과 1사이가 그 어떤 구간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구간이 유일하게 무에서 유로 바뀌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숫자에 끼어 맞추기 때문에 다소 억지를 부리는 느낌도 있다. 이해를 쉽게 시키기 위해 0과 1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상징성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한 번도 안 해 본 것 또는 하나도 없는 것과 한 번은 해 본, 하나라도 있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케이크를 한 번 먹어본 사람과 백 번 먹어본 사람의 차이보다 케이크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과 한 번 먹어본 사람의 차이가 더 크지 않겠는가.

단순히 수량이나 횟수가 아니라 "완벽"을 의미하는 면에서는 99가 100이 되는 순간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이 "100"의 단계는 우리가 아직 밟지 못한 경우도 많고, 도저히 도달할 수 없기도 한다. 또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치로 100을 정해야 할 때도 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100의 기준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절대적인 기준은 잡기가 어렵다. 상대적인 기준이라면 현재로서는 우사인 볼트를 100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는 결국 상대적인 기준이라 "완벽"이라 칭하기 어렵다. 마치 공부는 평생해도 끝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100은 언제나 경험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닌 것이다. 그에 비해 0에서 1 사이는 대개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전거를 100만큼 타려면 얼마나 잘 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은 0이니까. 이런 면에서는 역시나 0에서 1,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0에서 0이 아닌 상태로 넘어가는 때가 가장 중요하다(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구간을 정수로 나누므로 1 혹은 그 이상으로 한 번에 넘어간다고 치자).

매주 로또를 산다. 우스갯소리로 매주 로또를 사야하는 이유를 "5천원 어치를 사면 대략 160만분의 1의 확률이 생기지만, 사지 않으면 0이다. 0과 0이 아닌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라고 말하곤 한다. 진화론에 기반하여 최초의 생명체가 인간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머리로는 언뜻 상상이 안 가는 낮은 확률을 뚫었는가. 하지만 확률이 0이었다면 그 모든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은 이런 0과 1 사이의 중요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일까, 항상 어떤 첫 경험, 첫 도전은 두려우면서 설레고 또 무사히 마치고 나면 "와, 내가 드디어 이걸 해봤어!" 라는 짜릿한 감정이 피어난다. 최근에 이런 경험을 또 한 번 했다. 바이크다. 나는 면허도 없고 자전거도 조금 불안하게 타기 때문에 사실 바이크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또 이걸 내가 살면서 직접 타보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타보니 이 무척 짜릿한 게 아닌가. 비록 차도도 아닌 대학 내의 좁은 공간에서 시속 30km도 되지 않는 속력으로 몇 바퀴 돌았을 뿐이지만 생애 처음 느끼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바이크를 타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금세 면허를 따고 바이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가 어찌됐든 2018년 6월 9일에 처음 바이크를 탔다는 사실과 이 때 느꼈던 감정들은 평생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다.

만에 하나 내가 바이크광이 된다 하더라도 100의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0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살면서 단 하나라도 100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나는 불확실한 100을 노리기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0을 1로, 또 그 이상으로 바꾸고 싶다. 무에서 유로 바뀌는 순간의 짜릿함을 한 번이라도 더 누리고 싶다.
"サウイフモノニワタシハナリタ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