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ry's Personal Homepage S8 -The classic-

떡이 뭐라고

201208

얼마 전 가게 바로 앞 부동산 주인이 바뀌었다. 가게 근처에 음식점이나 카페, 편의점등이 새로 들어오거나 주인이 바뀌면 예의상(?) 한 번 가서 무엇이든 산다. 비록 그들이 내 가게에 오지 않더라도 한 번 쯤은 그렇게 한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행하라"는 "황금률"을 가능한 한 따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내가 갈 일이 전혀 없다. 그나마 계약이라도 내 명의로 한다면 모를까 전혀 상관이 없는 업종이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는데 며칠 후 개점 작업 중에 사람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이 앞 부동산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와 함께 클래식하게 떡을 주고 갔다. 나는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떡볶이와 떡국은 매우 좋아하며, 최근 종종 시켜먹는 지코바 치킨에도 꼭 떡사리를 추가로 넣는다. 물론 부대찌개 등에 넣는 떡도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그냥 간식으로 먹는 떡을 말한다. 추석에 송편도 굳이 먹지 않으며, 인절미고 백설기고 가래떡이고 누군가 먹고 있어도 굳이 같이 먹지 않는다. 흔히 개업이나 이사 때 돌리는 시루떡도 마찬가지. 오죽하면 시루떡 대신 모양과 색이 비슷한 티라미수를 돌리면 어떻겠냐는 말까지 반 쯤 농으로 하곤 했다. 물론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처음부터 막연히 호감도가 올라가겠지.

여튼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주고 간 떡을 보니, 얼마 전 누군가가 극찬했던 떡집에서 산 떡이었다. 이 떡집의 흑임자떡이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 곳 말고 또 인절미가 무척 유명한 떡집이 있는데 한 번은 누가 맛보라고 준 적이 있어 먹어 보았지만, 그래봤자 떡이 떡이지 나처럼 그다지 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소구할 만한 매력은 없었다. 뭐 이 떡집도 마찬가지겠지 싶었지만 일단은 궁금해서 조금 떼어 먹어보았다.

세상에, 맛있잖아? 놀라웠다. 떡알못이라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떡의 질감은 물론 고물의 질과 양이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내가 무언가 착각이라도 했나 싶어 다시 조금 더 먹어봤다. 내가 두 번이나 먹게 만드는 떡이라니. 물론 착각이 아니었다. 맛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SNS에 쓰니 다들 "부동산 주인이 먹는데 진심이다", "성의 있는 사람이다"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대충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떡을, 특히 대충 주변에 인사치레로 돌리는 떡을 굳이 그 떡집까지 가서 사왔다는 행위 하나만 보더라도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진짜 맛있는 음식은 원래 그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도 먹게 만드는 음식이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떡으로 첫인상을 호감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으니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미운 놈 떡하나 더 준다"는 속담의 떡은 과연 무슨 떡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맛있는 떡은 아닐 듯하다. 이 떡은 미운 놈에게 주는 떡이 아니라, 미운 놈이더라도 이 떡을 내게 주면 미운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질 만한 떡이다. 그깟 떡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의 인상을 바꾸어 놓은 걸까. 이 이야기에서는 그게 떡이지만 떡 대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 또한 이처럼 사소한 일 하나에서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세심한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