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ry's Personal Homepage S8 -The classic-

우리가 잊은 것은 없나요?

201217

더 이상 교회를 가지 않는다. 이제는 불가지론에 가장 가깝다. 어쩌면 나를 아는 누군가에는 매우 놀라운 사실일지도 모른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진심으로 신앙을 지켜왔으니까. 하지만 팬이 안티로 돌아서면 가장 무섭듯 나 역시 이제는 보통 사람보다도 더 회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한 때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신념이나 생각이 몇 번이고 완전히 바뀐 경험을 해왔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설마 내가 신앙까지 버릴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인생은 항상 이런 일들의 연속인걸까?

물론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와 관련된 인간 관계까지 전부 정리한 것은 아니다. 특히 2년간의 해외 생활, 즉 일본과 스웨덴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만난 인연들은 여전히 내게 소중하다. 비록 신앙의 틀 안에서 그들이 나를 받아들였기에 어쩌면 이제 그들에게는 나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그들이 그립고 좋다. 어찌됐든 가장 힘든 시기에 내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이기에.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연하장을 쓴다. 매년이라기엔 종종 너무 정신 없이 바쁠 때에는 건너뛰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보내려고 노력하니 매년이라고 치자.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보내지만 주된 대상은 위에서 말했던 해외 생활의 '은인들'이다. 지금까지 왠지 모르겠지만 주소록을 만들지 않고 매번 여기저기서 주소를 찾아서 썼다. 그것도 매우 귀찮은 일이라 올해는 마음 먹고 주소를 다 모아서 엑셀에 주소록을 만들었다. 주소 찾는게 무척 귀찮은 일인데, 어딘가 수첩 등에 기록해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 주소는 명함에서 또 누구는 예전 핸드폰에서, 또 누구는 급여 명세서에서...도대체 지금까지 왜 이 귀찮은 일을 매년 반복해왔던걸까?

일본 생활의 가장 큰 은인은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일본에는 교회가 무척 적은데, 우연히도 내가 살았던 그 작은 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처음 교회를 발견하고 그 앞을 서성이다 우연히 사모님 눈에 띄어 교회 안으로 안내 받았고 그렇게 그 교회 사람들과 인연이 시작됐다.

목사님은 교회 홈페이지를 직접 운영한다. 일본의 흔한 개인 홈페이지 스타일, 즉 한국에서 밀레니엄도 더 전에 나모 웹에디터 등으로 대충 만들던 그 옛 감성의 홈페이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교회 홈페이지 역시 그런 디자인의 홈페이지다. 언제부터인지 찾아보기 어려운 프레임을 아직도 쓰고 있다! 여하튼 홈페이지가 있고 거기에 주소가 있으므로 매번 목사님에게 연하장을 보낼 때에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소를 찾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노가다도 마지막이야. 이제 내년부터는 주소록에서 바로 긁어서 주소를 뽑을 테니까.

으레 그렇듯이 홈페이지 하단에 주소가 있으니 스크롤을 열심히 내렸다. 주소를 찾아서 복사하려는 찰나,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었다.

教会はバリヤーフリー車椅子のまま入れます。手話通訳も可能です。ほじょ犬は一緒に入れます。
교회에는 문턱이 없어 휠체어에 탄 채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수화 통역도 가능합니다. 안내견도 함께 입장할 수 있습니다.

아아...이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 수는 50명이 채 안 된다. 그런 작은 교회에서도 이처럼 소수자를 위해 애를 쓰는데 내가 다녔던 또 봐왔던 크고 좋은 교회들은 어땠더라. 물론 요즘에는 흔히 "메가 처치"라 부르는 교회들중에서는 수화며 각종 외국어 통역까지 전부 하는 곳도 심심찮게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작아져도, 그럼에도 일본의 작은 교회보다는 훨씬 큰 수백 명 규모의 교회조차도 너무나 '정상인'만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지어놓았다. 내가 오래 다닌 교회는 건물 자체가 언덕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극히 최근에 엘리베이터를 드디어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결코 혼자서 예배를 보러 갈 수 없었다. 언덕에 오르더라도 예배당은 또 2층이고 결국 누군가 들어서 올리는 '봉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편의점보다도 교회 수가 많은 나라, 신도 수나 세력에서 일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양적 성장을 했다는 나라의 교회들이 개신교에서 만큼은 '고작' 일본 밖에 되지 않는, 그 중에서도 작은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만도 못하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예전에 일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경이로운 나라였다. 삼성이 소니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큰 기업이 될 거라고 하면 누구나 비웃었을 것이며, 한국이 아이돌을 일본에 수출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제는 삼성이 한국 기업인지는 모르더라도 갤럭시를 쓰며 BTS가 빌보드를 석권하는 시대다. 더 이상 그 누구도 해외 여행을 갔다가 조지루시 밥통을 사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이대로 괜찮습니까? 우리가 잊은 것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