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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201221

혈액형과 별자리의 후계자는 이제 MBTI인걸까? MBTI가 앞의 둘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태어난 날이나 항원의 유무에 따라 정해지는게 아니라,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한 후에 그걸 토대로 유형을 나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과학'의 지위는 결코 얻을 수 없으나, 이미 주어진 질문에 답을 했기에 비슷한 유형끼리 묶어서 비교해 보기엔 좋다. 그래서 종종 더 '합리적'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MBTI 외에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어떤 조건 하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결국 다 비슷한 컨텐츠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평생 한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같은 질문 말이다. <올드보이>도 아니고 현실에서 그런 일이야 어차피 일어나지 않지만, 가끔은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진지하게 어떤 길을 택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긴 하다. 문제라면 나는 너무 깊게 생각한다는 점일까?

위에서 말한 평생 한가지 음식만 먹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솔직히 바로 한 음식을 고를 수 있는 마음 편하고 낙천적인 사람이 부럽다. 나처럼 꼬인 사람은 답을 말하기 전에 알아야 할 전제 조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가지 음식만 평생 먹었을 때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가정하나?' '그 음식은 마법처럼 저절로 나오거나 누가 공짜로 제공하나?'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면 만드는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예를 들어 고추장은 살 수 있는가 고추 재배부터 해야 하는가' '한가지 음식에서 한가지는 어디까지인가? 예를 들어 피자는 피자 자체로 하나의 음식으로 친다면, 김치찌개는 찌개만 음식으로 치는가 밥까지 세트로 쳐주는가. 쳐준다면 세트 구성은 어떤 조건으로 이뤄지나, 피자와 피클까지인가 핫소스나 콜라도 포함되나' 등등. 이처럼 그냥 재미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달려드니 시작조차 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이런 간단한 놀이에서조차 상대방의 의도를 알고 싶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가령, 건강 걱정 없이 마법처럼 매일 눈앞에 그 음식이 뿅 나타나는 조건이라 한다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혹은 "가장 질리지 않는 음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반면, 건강이나 현실적 조건을 빠듯하게 다 맞춰야 한다면 좀 더 복합적인 질문이 된다.

자, 이왕 이야기를 꺼낸 김에 그래서 한가지 음식을 고른다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당연히 바로 답할 수 없으니 대표적인 조건 몇 가지를 설정하고 각각 답을 내본다. 일단 모든 조건을 무시한다면 역시 피자다. 나는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인 셈이다. 건강은 무시하되 메인 음식에 밥이나 빵 등의 주식과 샐러드, 소스와 음료까지 세트로 쳐서 '한가지'로 쳐준다면 돼지국밥이나 김치찌개도 고려해볼 수 있다.

현실 세계처럼 마트를 이용할 수 있고 내 돈으로 직접 장을 봐서 스스로 해먹으며 건강까지 신경써야하는 복잡한 조건이라면? 여러가지 채소와 고기, 콩 등을 넣은 케밥을 고르겠다. 좋아하는 음식 서열에서 열 손가락 안에도 못 들지만, 종합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내게는 이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공감력이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의 선택과 실제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의 선택에는 분명 괴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굳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일까지 피곤하게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성미가 풀리지 않는달까. 뭐 이런 것 자체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니 결국 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면 그게 제일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