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ry's Personal Homepage S8 -The classic-

도량형과 외국어

210110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았어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 바로 바벨탑 이야기다. 여호와는 정말 하나였던 언어를 흩었을까? 물론 성경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언어보다 도량형을 다르게 한건 아닐까 싶다.

통역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이나 평범한 전공자들 보다는 통역을 많이 한 편이다. 자연스레 이런 저런 수많은 현장과 내가 처음 접하는 분야의 회의에도 들어가봤는데 그 때 느낀건 언어를 안다고 아는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말이 안 통해도 심하면 눈빛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정도로, 자신의 분야 이야기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는 유일하게 양쪽 언어를 다 하는 나만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람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는 굴욕적인 순간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하늘에 닿는 탑을 지으려 모은 사람들이 과연 갑자기 언어를 섞는다고 일을 못 할 정도가 되었을까. 그보다는 도량형을 뒤섞는게 어쩌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에 대한 방증은 현대에도 끊임 없이 나온다. 가장 최근에는 그 귀한 코로나 백신 보관 온도를 섭씨가 아니라 화씨로 착각하여 못 쓰게 만들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주선이 폭발한 사고 중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다고 들었다. 충분히 그럴 듯하지 않은가?

도량형을 환산할 때의 느낌은 마치 아직 숙달되지 않은 외국어를 할 때의 느낌과 흡사 같다. 외국어를 할 때에는 생각 자체를 외국어로 하라는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텐데, 내 느낌으로 그건 이런 말 같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를 이해할 때에는 꼭 한국어를 거치는 과정이 일어난다. 그러면 속도도 늦을 뿐만 아니라 느낌도 바뀔 수 있다. 모든 언어가 모든 개념이나 느낌을 똑같이 표현하거나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한 명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설명을 위해 예를 들자면, apple이란 단어를 듣고 사과를 거쳐 '붉고 둥글며 새콤달콤한 과일'을 떠올리는게 아직 영어가 미숙한 사람의 사고 과정이다. 잘하는 사람은 사과를 거칠 필요가 없이 바로 본질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바이링구얼들을 관찰해보면 이런 현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영어의 aunt는 고모와 이모, 숙모를 아우르지만 한국어는 모두 다르다. 아빠가 네이티브 미국인이고 엄마가 네이티브 한국인인 경우에, 이 아이는 아빠의 누나는 aunt로 인식하고 엄마의 언니는 이모로 인식한다. 엄마의 언니도 영어로는 aunt라는 사실은 나중에 가르치기 전까진 모른다. 고모는 aunt라고 부르지만 이모는 이모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또 그 단어들 사이의 관계성도 물론 잘 모른다. 이게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때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다시 도량형으로 돌아가서,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화씨 온도나 마일, 피트 등으로 표현한 숫자를 보면 대부분 바로 감을 잡지 못한다. 이 또한 재미있는 것이 어떤 이유로 일부 익숙한 구간이 있는 사람은 그 구간에서 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도량형이어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수천 마일 단위에서는 감이 바로 안 올지 몰라도 시속 100마일 근처의 속도는 바로 시속 몇 km 정도인지 금방 안다. 투수의 투구 속도가 그 정도이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도량형을 환산하다가 문득 외국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면에서는 언어가 다를 때보다도 이게 더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벨탑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언어는 결코 통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지만(잠깐 통일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흩어져 사는한 꾸준히 방언이 발전하면서 점점 달라질 것이다) 도량형은 통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 하는 나쁜 짓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양심이 있다면 도량형 만큼은 좀 대세를 따라주기를 바란다. 또 다른 귀한 백신이 화씨 온도로 착각한 사람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