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ry's Personal Homepage S8 -The classic-

알파와 오메가

210117

오래 다녔던 교회 대예배당의 단상 한가운데에는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무척 큰 성경이 항상 펼쳐진채로 놓여있었다. 제단 양 옆에는 촛대가 있었고 예배 시작과 동시에 불을 붙였다. 제단은 돌로 만든 받침대가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 받침대는 두 글자를 본따 만든 것이었다. 알파Α와 오메가Ω였다.

성경에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일 텐데, 대개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끝을 나타내는 관용어구로 쓰인다. 비슷하게 '태멘'이라는 이름을 쓰는 교회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아마도 한글 성경의 첫 글자가 "태"이고 마지막 글자가 "멘"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알파와 오메가랑 비슷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계, 우주의 알파와 오메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하면서 과학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데, 주로 천문학 이야기가 많이 나오다 보니 우주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정한 알파와 오메가의 모습이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시작과 끝은 커녕 현재 전 우주, 아니 태양계 자체도 아주 일부만 알고 있는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이야기다. 사실 거기까지 갈 일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 바닷속도 제대로 모르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열 길이니까 알 수 있겠지 수천 수만 길이 된다면 인간은 아직도 그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재 이론으로 정리해보면 알파와 오메가가 한쌍의 대구를 이루며 꽤 그럴 듯한 모습이 된다. 무한히 작은 한 점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가, 그게 한 순간의 폭발로 널리 퍼져나가 결국 모든게 원자 단위로 쪼개어져 서로 멀어지고 멀어져 균일하게 섞인 상태로 평형을 이루는 모습이 된다니 무척 그럴싸하지 않나. 양자 역학과 엔트로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주의 원리가 참 신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우주의 시스템을 신이라 한다면 나는 여전히 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이 상상해도 헤아리기 어려운 우주의 일을 생각하다 보면 종종 삶이 너무 초라하고, 그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 의미 없이 느껴질 때도 있다. 쉽게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또 잘 생각해보면 당연히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전우주 스케일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무한히 작은 한 점이나 마찬가지인 내가 또 우리들이, 이 한순간에 만나고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 없는 확률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너무 큰 세계에 압도되어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막 대하기 보다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임에도 무언가를 이뤄내고 또 열심히 살아간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게 마음 먹기 나름이다. 그리고 그게 어쩌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정한 알파와 오메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