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ry's Personal Homepage S8 -The classic-

푹신한 침대에 누워 달콤한 케이크를 핥아라

210322

꽤나 철지난 스타일이긴 하지만, 사자성어나 고사, 속담의 원래 뜻을 비틀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이쯤에서 제목만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을 잡은 사람도 있겠지. 맞다 와신상담에 얽힌 이야기다.

요즘은 한자를 교과 과정에서 안 배운다고 했던가. 중고등학교에서 한자를 배우고 심지어 특이하게도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에서 이미 2천자를 배웠기에, 더 나아가 전공이 일본어라 약간 글자가 다르다고는 해도 계속해서 한자와는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와서인지 한자를 전혀 모른다고 하면 조금 신기한 기분이 된다. 물론 "엣헴, 한자도 모르고서 무슨 글을 논한다고!" 하는 꼰대 마인드를 가진건 아니다. 기본 한자 지식을 알면 한자로 이뤄진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도의 입장이고, 여전히 한자를 모르면 일상 생활이 불편한 일본어와 달리 한글만으로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한국어에서 이걸 모르네 어쩌네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한자의 뜻을 알고 나아가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해당 성어를 단순히 문자와 뜻으로 연결하는 것보다 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 연결 고리가 허술해지기도 한다. 최근 트위터에서 와신상담과 관련된 트윗을 본 적이 있는데, 고사의 내용을 모르고 뜻만 알았는지 와신과 상담을 모두 한 사람이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두 행위의 주체는 다른 사람이다). 어찌됐든 그 덕에 오랜만에 와신상담의 가치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과연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장작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는게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까?

'라떼만 해도~'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경구처럼 받아들여졌다. 그깟 대학 하나 가자고 4시간을 자며 수명을 깎아야 한단 말인가, 5시간도 이미 충분히 적게 자는건데.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 분위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요즘은 어떤가. 6시간도 모자라서 8시간은 자야 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6시간 자면 오히려 4시간 자는 것보다도 나쁘다는 이야기도 보았다. 4시간 자면 적게 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6시간 자면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럴싸하다. 조금 자더라도 장작 더미 위에서 자는 것처럼 불편하게 잘 현대인이 얼마나 있겠나, 아무리 잠자리가 불편하더라도 그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수면 시간이 적어 문제라니, 장작 위에서 자며 결국 복수에 성공했다는 부차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물론 그러니 그는 고사에 나오는 신화적 존재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한편 여전히 식량 문제로 고통받는 인류가 다수 존재하는 현실이지만, 최소한 이 하찮은 사이트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당장 배를 주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음식은 생존을 넘어 문화의 영역에 안착한지 오래고, 따라서 영양 공급 목적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음식도 당장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갖은 쾌락을 음식을 통해 맛보려는 이 시대에 복수를 위해 일부러 쓰디쓴 쓸개를 핥을 수 있을까. 그런다고 목표 달성에 정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사회 전반 분야에서 비과학적인 '정신력'의 중요성은 떨어져 간다. '근성'으로 '노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농경 시대의 꿈과 같은 이야기다. 물론 그 마저도 충분히 과장된 이야기였겠지만. 최근 스포츠계에서 이른바 '학폭'이 하나둘 씩 밝혀지는 배경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더 이상 배곯아가며 수돗물 마시고 선배에게 구타당하면서 독기로 이기는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건국신화에서부터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으며 인간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어쩌면 그러한 정신이 DNA에 각인된 민족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이제는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폐기물과 다름 없다.

목표를 쫓을 때에는 온전하게 최선을 다하고, 그 외 시간에는 몸과 마음을 쉬고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필요한 곳에 적절히 자원을 분배하고 재생산을 위해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 하지 말자. 고사 자체도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와신상담, 굳이 이 시대에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하여 몸이라도 상한다면 그보다 바보 같은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푹신한 침대에 누워 달콤한 케이크를 핥아라" 이게 오히려 요즘에 들어맞는 시대 정신일 것이다.